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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동동해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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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Cantona

Eric Cant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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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이름 :  에릭 칸토나
  • 생년월일 : 1966. 05. 24
  • 신체사항 : 188 cm, 85 kg
  • 국가 :프랑스(은퇴)
  • 포지션 : FW

Player Info============================================================================================

 
맨유의 팬이라면 한번쯤 들어 봤을 법한 이름 에릭 칸토나!!!
최고의 축구팀에는 항상 최고의 주장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팀을 이끄는 주장의 플레이나 성격은 종종 팀 전체의 스타일은 물론 성적까지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축구사상 최고의 주장을 꼽으라면 누가 있을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의외로 많은 이들이 에릭 칸토나를 꼽는다. 악마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강한 카리스마를 가졌던 에릭 칸토나. 그는 역사상 그 어떤 주장도 그보다 더 열정적인 사람은 없었다고 표현되는 주장 중의 주장이며 선수였다. 유럽출신의 어떤 선수도 칸토나처럼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영향을 준 선수는 없다 에릭 칸토나는 프리미어쉽으로부터 영감을 받았고 동시에 그 리그에 영감을 주었던 플레이어로 기록된다. 칸토나가 영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일련의 심판과의 시비로 인해 프랑스에서 제재 중이었다. 그의 프랑스에서의 촉망되던 미래는 그 문제로 인해 어두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의 팬들이 그를 보고 싶어했다. 셰필드 웬스데이가 그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그 팀은 제재 중인 선수와의 계약에 있어 끝내 소극적이었다. 칸토나를 받아들인 팀은 리즈 유나이티드였고 리즈는 그 해 공교롭게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치고 우승한다. 그러나 리즈의 매니저 하워드 윌킨슨은 시즌이 끝난 후 칸토나를 팀의 가장 무서운 강적에게 넘겨주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하지만 프리미어쉽 전체의 미래를 고려할 때, 그것은 결코 과오가 아니었다. 칸토나는 오랜 세월 동안 우승하지 못했던 과거의 명문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붉은 악마들"은 26년만에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의 정상에 복귀한다. 그것은 실로 조지 베스트와 보비 찰튼이 일구어냈던 한 시절 이후 최초의 기록이었다 그 위대한 팀이 드디어 부활했다. 맨체스터는 프리미어쉽을 다시 한 번 주도해 나아가기 시작했고 유럽의 클럽 무대에도 재등장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칸토나가 있었다. 그는 이제 "올드 트래포드의 신"으로 불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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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칸토나는 영국에서도 그의 축구 재능 하나 만으로 유명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미 프리미어쉽에서도 많은 퇴장과 출장 정지를 당한 바 있었던 그의 "위험 인물" 행적의 절정은 1995년 1월 25일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발생한다. 칸토나는 예의 보복성 파울로 퇴장을 당하는 과정에서 쏟아지던 팰리스 팬들의 야유에 격분 한 관중에게 광고판을 뛰어넘는 "환상적인 발차기"를 날렸고 그것은 세계적인 센세이션이었다. (위의 사진) 그 댓가는 작지 않았다. 그는 2주간을 감옥에서 보냈으며 여러 개월의 출장 정지를 당해야만 했다.
당시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쿵후의 제왕-_-"이었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는 그 위대한 선수의 재능을 계속 썩혀두진 않았다. 그는 1995년 10월 1일 리버풀과의 대결에서 돌아왔다. 그 경기에서 칸토나는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빠른 적응력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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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런 칸토나의 기행에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팀은 칸토나만이 살길 이라고 생각했다. 알렉스 퍼거슨 (Alex Ferguson) 감독이 모든 비난을 몸으로 막아내면서 까지 칸토나 품기에 성공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터 밀란(Internazionale Milan)이 1995년 4월에 칸토나를 영입하기 위해 온갖 힘을 다 썼지만 칸토나에게 '난 맨체스터 에서 죽고 싶다' 라는 한마디에 포기를 한 것도 자신을 감싸준 팀에 대한 의리라고 할 수 있다. 칸토나의 사나이 다운 행동은 곧 맨체스터 서포터즈인 레드들의 칸토나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돌아 왔다. 사고뭉치인 그가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레드들은 칸토나를 신으로 부른다. 아직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수 팬들은 데이비드 베컴이 7번을 달고 뛰었던 전성기때 보다 예전 에릭 칸토나가 7번을 달고 뛰던 시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더 재미있었다는 말을 간혹한다 에릭 칸토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에 의해 종종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선택되곤 했다. 이것은 물론 많은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조지 베스트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칸토나에게 부적절한 지지를 보냈다. 베스트가 당연히 베스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프리미어쉽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모든 세계의 젊은 세대들에게 칸토나의 영향력이 얼마나 절대적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에릭 칸토나가 단순한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축구 선수로서도 항상 높은 기량을 보여줬다는 점, 팀의 주장으로서 소속팀 선수들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강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에릭 칸토나가 역사상 그 누구보다 더 축구라는 운동을 온몸으로 사랑한 사람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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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edited on 03/14/2007 17:03 by wpeof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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